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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만나고, 그대를 만나고, 만남의 연속

[긴츠라] 노을 빛 벚꽃 본문

즈라른 연성

[긴츠라] 노을 빛 벚꽃

월영 (月影:香) 2016. 5. 10. 01:53

다시 너를 만난다는 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봄날의 추억이다.

 

*

따스한 햇살, 잔인하게도 모든 것을 얼려버렸던 그 냉혹함이, 그 겨울이 어느새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로 바뀐 채 나의 심장을 적시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 그날도 추운 날이었다. 과거에 너는 선생님의 목을 베는 그런 어쩔 수 없었던 막중한 부담감에 뜨거운 심장은 얼어붙었으리라. 그리고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하고 가끔씩 꿈에 나오는 선생님의 모습에 놀라며 잠에서 깨리라.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누구보다 많은 무거운 큰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너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다. 오로지 너의 오랜 친우로서 너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위로를 해주고 그저 그것밖에는 해줄 수가 없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너는 나를 그저 친우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기에 나도 이 마음과 생각을 눌러 담고는 너에게 그저 그것밖에는 해줄 수가 없다.

차라리 너의 짐을 내가 대신 지게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왔냐? 오늘은 무슨 일로 왔대?”

“긴토키, 네가 잘 지내나 걱정되어 와 봤지.”

“즈라. 나보단 네가 더 위험한 건 알고 있지?”

“즈라가 아니라 카츠라다. 물론 나는 항상 그렇듯 잘 숨어 지내고 있지.”

오랜만에 만난 너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웃고 성숙해졌다.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너의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이제는 나 없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거겠지.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널 보는 것 같네.”

“그 동안 너 많이 늙었다?”

“무... 무슨 소리인가! 나... 나는 늙지 않았어!”

“장난이다. 장난. 그것도 모르겠어? 바보 즈라.”

예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구나.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잘 지내줘서.

“긴토키. 벚꽃이 참 아름답더군. 혹시 시간 있으면 나와 벚꽃 길을 걷는 게...”

오랜만에 너와 그때의 그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어. 어릴 적 손잡고 같이 걷던 그 길을. 비록 없어진 길이지만.

“쳇. 그런 건 여자애들이나 꼬맹이들이나. 좋아하는 거라고. 애초에 바깥에는 전부다 연인들에 가족들 밖에 없다고. 남자 둘이 뭐 하러 벚꽃을 보러 가?”

“그냥 아름다우니까 보러가자는 거지. 낭만적이지 않은가?”

“남자 둘이 낭만은 무슨...”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냥 모른 척하고 한 번만 따라오게나. 아니면 나를 연인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오게나.”

긴토키의 손목을 잡고 바깥으로 나섰다. 예전보다 얇아진 너의 손목은 순간 나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우리를 반기는 따스한 햇살과, 벚나무 위에는 눈인지 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벚꽃들이 나무를 수놓았다. 그 많은 벚나무들이 길을 채워 벚꽃 터널을 만들어냈다. 작은 바람에 벚꽃 잎은 하얗게 부서져 마치 첫눈처럼 조용히 떨어졌고, 곧이어 센 바람이 불자 마치 함박눈처럼 벚꽃 비가 내려왔다.

“봐. 아름답잖아.”

“그래. 생각보다는 예쁘네. 너같이.......”

“응? 방금 뭐라고 했지? 못 들었네.”

“됐어. 벚꽃이나 봐.”

그렇게 서로 아름다운 벚꽃에 취해버리고, 조용히 우리를 반기던, 벚꽃 잎으로 수놓아진 거리를 걸었다.

“긴토키, 그때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끝없는 전쟁 후에 네가 제일 먼저 우리를 떠났던 거. 기억하는가?”

“응. 기억해.”

“사카모토가 전쟁 중에 우주로 떠나고, 신스케와 나와 너만 남았다가 결국에는 네가 제일 먼저 가 버렸지.”

찰나의 적막이 흘렀고, 나는 참아왔던 많은 일들을, 생각들을 내뱉어버렸다.

“그때 혼자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했어. 신스케의 분노와 너의 중압감과 책임감을. 너는 그저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거야. 너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어. 난 가끔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 우리 모두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지내왔었지. 아마 지금 쇼요 선생님이 우리를 다시 본다면 우리를 혼냈겠지.”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어. 너도 알잖아, 즈라? 그 놈을 절대 꺾을 수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 허나 조금이라도 돌려볼 수는 있지.”

“이미 늦었어.”

“그래. 그럴 지도 모르지.”

다시 우리가 신스케를 만난다면 우리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조금은 돌려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정말 뜬금없는 소리지만. 즈라. 우린 절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

“무슨 소리인가.”

“너와 나 조차도 다시 예전 같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소리야.”

거센 바람이 불었다. 흰 벚꽃 잎들이 나의 시야를 가렸다. 너는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나 예전부터 너를 쭉 좋아했었다고. 요 녀석아 그 정도 했으면 알아달라고.”

“나도 너를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오고 있었네. 긴토키, 네가 눈치가 없던 거겠지.”

“요녀석아. 내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너를....... 잠깐만 방금 뭐라고 그랬어?”

“나도 그랬다고 말했네.”

저 빛나는 노을처럼 나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물론 너도 그랬다.

“우리 너무 돌아왔어. 이제야 만난거야. 이제야 다시 만난 거라고.”

“너에게 언제나 친우 이상으로 힘이 되어주고 싶었어. 긴토키. 항상. 항상 그랬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지금 다시 만난 거다. 우리는 지금에 와서야 만난거야.”

“그래.”

 

밝게 빛나는 너의 미소가 나를 녹였다. 그리고 나도 너를 녹일 거다.

저 노을빛에 물들어 버린 벚꽃 잎에 대고 약속하지. 다시는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다시는 보내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의 얼어붙은 마음속 상처들을 반드시 내가 보듬어 줄 거다.

다시 한 번, 저 하늘에 대고 맹세하지. 다시 만난 지금 나는 너를 보내지 않을 것이고, 내가 너를 끌어안아 주리라.

우리들의 하늘은 아직 지지 않았어. 저 노을이 지고 나면 다시는 지지 않겠지.

왜냐면 저 노을은 우리의 맹세니까. 저 노을빛 벚꽃은 우리의 추억이니까.